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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장/마음공부 & 감정읽기

이타심 vs 이기심 -1

by 앨리Son 2020. 4. 10.

 

오늘은 이타심과 이기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이타심(利他心)은 "남을 위하거나 이롭게 하는 마음"이고, 이기심(利己心)은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심과 이타심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 성향이 더 강한지, 또는 어떤 상황에 따라서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도 하고, 이타적인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흔히 이기심은 나쁜 의미로, 이타심은 좋은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 편입니다.

 

오히려 현대 사회에선 이타심으로 살다간 손해만 보는 호구가 되고, 이기심을 더 현명한 자세로 추앙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하지만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들 사이에서 이기심만 존재한다면 우린 모두 상처투성이가 되고 말 거예요.

 

 

자신의 성공과 성장을 진심으로 기뻐해 줄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가족일까요? "자신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본 적 있어요. 내용은 보지 않았지만 대충 짐작이 되었죠.

 

 

가족 중 형제, 자매라면 질투심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은 무조건 기뻐하시지 않을까요? 하지만 부모님도 사람인지라 그 이면에는 여러 감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어떤 가정의 아버지는 장성한 아들을 상대로 끝없이 경쟁을 하려고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젊은 아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으니, 한 마디 남기셨다고 해요. 서른이 넘은 장가갈 생각이 전혀 없는 아들에게 "결혼만큼은 내가 이겼다."라고 하셨대요.. 참 귀여운 아버님이시죠 :)

 

어떤 어머니는 딸에게서 질투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남편이 딸에게 예쁜 인형을 선물해 주고, 딸과 다정하게 놀아주는 것을 보면 질투심이 확 치밀어 오릅니다.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한 상처 받은 내면 아이가 훅 치고 올라오는 거예요.

 

어떤 할아버지는 손자와 경쟁하려고 하다가 혼쭐이 나셨대요. 어린 손자가 놀이터에서 철봉 놀이를 하는 걸 구경하다가,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신 거죠. 어린 손자가 턱걸이를 너무 잘하니, 경쟁심도 발동하고요. 그래서 할아버지도 무리하게 용쓰며 턱걸이를 하다가 몸에 심하게 무리가 간 거죠. 병원에 갔더니 인대가 늘어났대요. ㅠ

 

부모는 자식의 성공과 성장이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내 품을 떠나는 것이 두렵기도 합니다. 육아가 힘들고 지치지만 한편으론 "너무 빨리 커서 서운하다."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알 것 같아요.

 

부모, 자식 간에도 비교하고 경쟁하고 질투심을 느낄 수 있는 이유를 이기심 vs 이타심의 관점으로 생각해 봤어요. 오직 자식의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이타심으로 바라보면 한없이 기쁘고 대견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기심으로 바라보면 여러 감정이 뒤섞입니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이럴 수 있는데 하물며 남은 어떨까요? 꽤 오래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직업을 여러 번 바꿨는데, 공연기획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어요. 꽤 오래 일했던 곳 중 하나였죠. 그곳에서 소위 열정페이라 불리는 박봉을 받으며, 야근을 일상화하면서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었어요.

 

스스로 천직이라 믿었던 전공 쪽 일을 조금 하다가 내팽개치고, 그 일을 선택했었어요. 음악과 공연을 좋아했고 기대와 목적이 있었기에 그런 환경을 버틸 이유가 있었죠. 연장근무 몇 시간 하는 야근이 아니라 24시간 풀타임 근무가 많았기에 건강도 상하고, 심적으로도 피폐한 생활이었습니다.

 

게다가 그곳은 체계가 없고 특수한 환경이어서 새로운 직원이 오면 한 달 이상을 넘기기가 힘들었어요.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일한 지 3일째 되는 날 자신의 짐도 고스란히 놔두고 사라져서 잠수를 탄 경우도 있었어요. 시트콤 같은 황당한 일이 거기선 매일 벌어졌고, 이 소재로 책을 쓰면 5권은 시리즈로 낼 수 있다는 농담을 자주 하곤 했어요.

 

9시 출근해서 6시에 칼퇴근하면서 저보다 훨씬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친구들이 부럽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누구는 하루를 버티지 못했고, 누구는 한 달을 버티지 못한 일을 저는 몇 년 동안 했으니 미련한 건지 잘 참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이 고통 뒤에 어떤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일을 할 때 제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제 얘기를 들으며 저의 고통을 간접 체험은 충분히 했겠지만, 그들은 제 직업을 좋아했습니다. 왜냐면, 확실하게 그들이 받을 혜택이 있었거든요. 가족, 친구, 친척, 지인에게 초대권을 줬고, 공연 현장 알바 자리를 제공해 주기도 했고, 이벤트 참여의 기회를 주기도 했습니다.

 

보통 알바생까지 뒤풀이 자리에 참석하진 않았지만, 제 지인들이라는 이유로 함께 동석하기도 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가수나 뮤지컬 배우, 피아니스트와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는 일 또한 평범한 일상에 즐거운 경험이 되기도 했을 거예요.

 

남의 속도 모르고 그들은 지나고 나서도 이런 말을 하곤 했어요. "너 그 일할 때 정말 좋았는데~"라고 말이죠. 어르신 공연할 때는 평소에 자주 뵙지 못했던 친척 어른들을 초대하기도 했는데, 난감한 상황이 많았어요. 받는 사람에게 초대권은 공짜지만, 회사 입장에서 초대권은 공짜가 아니거든요.

 

직원에게 할당되는 초대권 수량 외에 계속 몇 장씩 몇 장씩 추가로 요구하는 친척 어르신들이 있었어요. 그때 말은 안 했지만, 사비로 사서 초대권이라고 드린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더는 안되니 죄송하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한창 힘들 때 누군가 이렇게 말했어요. "고생하는 건 알겠지만, 너로 인해 이렇게 혜택받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너의 희생이 값지고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라."라는 말이었죠.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 말이 제게 위로가 되었을까요? 누구를 위해서죠? 자신을 위해서겠죠. 제겐 희생을 강요하는 말, 이타심을 강요하는 말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어요.

 

더 이상 못 버티겠다 싶어서 오늘, 내일 그만둘 날만을 생각하는 와중에 뒤통수를 강타한 한마디가 있었죠. "야, 00공연 잡혀있잖아. 나 그 공연 보고 싶은데.. 그때까지만 좀 참아라." 전 그 사람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가 않았어요. 아무리 사람은 누구나 이기심이 있는 존재라지만, 이기심도 때와 상황을 가릴 줄 알아야죠.

 

누가 힘들어서 죽겠다고 하는 와중에 내 잇속을 먼저 생각해서 "더 참아라, 더 버텨라."라고 상대를 궁지에 몰아세우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잖아요.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은 "네가 그렇게 힘들었구나. 우린 좋은 혜택 받느라 그것도 모르고 있었네. 그렇게 힘들다면 그만둬. 그만둬도 괜찮아. 누군가를 위해 살지 마. 너 자신을 위해 살아. 너 자신이 가장 먼저야."라는 말이었어요.

 

이 말 또한 이타심이 아닌 이기심에서 나온 말이 맞아요. 상대방이 내 입장을 먼저 생각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니까요. 이기심과 이타심은 빛과 그림자처럼 한 세트로 움직입니다. 상대방에게 이타심을 바라는 마음이 곧 이기심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기적인 누군가의 행동이 유난히 거슬린다면 자신에게도 이기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기심을 타인을 통해서 체험하게 되는 원리입니다. 정반대로 이기심을 많이 체험하게 되는 또 다른 유형은 매우 이타적인 사람입니다. 자신의 이타심을 온전히 체험하기 위해서 정반대의 이기심을 체험하게 되는 원리죠.

 

이타심 vs 이기심에 대한 글은 다음 시간에 이어서 몇 편 더 발행할 예정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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