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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장/마음공부 & 감정읽기

강약약강,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인간의 이중성

by 앨리Son 2021. 2. 12.

 

오늘은 강약약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은 우리 주변에서 꽤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또는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그게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고요. 그 반대로는 강강약약이 있고, 그 외에 강강약강, 강약약약이 있습니다.

 

강약약강의 대표적인 예로는 상사 앞에선 굽신거리며 비위를 살살 맞추고, 만만한 부하직원은 괴롭히고 나쁜 의미의 꼰대 짓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상사 앞에서 비굴한 건 잘못이 아니지만, 부하직원을 괴롭히는 건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죠.

 

가정 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싸움을 한 뒤 화가 잔뜩 난 엄마가 첫째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면, 첫째는 둘째에게, 둘째는 막내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 역시 강약약강의 한 형태이죠.

 

 

 


강약약강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인간의 이중성


 

약자라는 것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신체적인 약자, 부와 권력, 계급 측면에서의 약자뿐만 아니라,

 

착한 사람, 잘 받아주는 사람, 이해심이 많은 사람, 배려하는 사람, 친절한 사람, 안전한 사람, 더 좋아하는 사람, 더 사랑하는 사람,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해도 나를 떠날 것 같지 않은 절대적인 내 편.

 

 

이런 좋은 사람도 관계에선 약자의 위치에 놓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린 약자의 역할을 맡기도 하고, 강자의 역할을 맡기도 합니다. 절대 강자, 절대 약자란 존재하지 않죠. 

 

영성적인 측면에선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오늘은 그저 에고 충만한 한 인간의 입장으로 이 글을 써보려 합니다.

 


 

고등학생 때 만난 한 친구가 있어요. 지금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되었습니다. 새 학기가 되어 낯선 분위기 속에서 처음 사귀었던 친구인데요. 바로 제 앞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어느 날 뒤돌아 저를 보더니, 서로 아는 게 별로 없던 사이에서 갑자기 자신의 힘든 과거사와 고민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오죽 힘들면 저럴까 싶어서 저는 그냥 들어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그런 무거운 얘기들을 제게 쏟아부었죠.

 

그 친구는 좀 소심하고 불안정해 보였지만, 착한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꽤 힘든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제가 들어주는 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신의 모든 얘기를 쏟아붓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습니다.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외면하진 못했던 거예요. 그래서 그 친구가 좀 더 릴랙스하고 이성적일 수 있기를 바랐고, 그렇게 권유했지만 잘 되진 않았습니다.

 

제 앞에서 자신의 치부와 깊은 속마음을 모두 보여줬죠. 관계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켜켜이 쌓아가는 것인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친해진 사이는 어딘가 불안정하고 위태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는 제게 자신의 모든 감정을 쏟아내면서 점점 더 가벼워지고, 저는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함으로써 점점 더 무거워져 갔습니다. 그때 그 꽉 찬 쓰레기를 어디 다 어떻게 비워내야 했을까요? 애초에 쓰레기통 역할을 한 게 크나큰 실수였죠.

 

그 친구는 그런 저를 안전한 사람이라고 여겼는지 혹은 만만한 사람이라고 여겼는지, 언젠가부터 말이나 행동이 돌변하기 시작하더군요. 소심하지만 착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최소한의 예의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어요. 친하지 않은 친구들에겐 한없이 친절하게 굴면서 저에겐 아주 무례하게 굴더군요.

 

수능 준비하느라 다들 예민하고, 남의 고민을 들어주고 있을 만큼 한가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친구가 너무 불안정해 보여서 나라도 들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을 뿐이죠. 거기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을 바라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런 결말을 예상친 못했습니다. 그런 인간의 이중적인 본성에 저는 혐오를 금치 못했죠.

 

 

저는 학창 시절 불의를 보면 못 참고, 약자에게 더 약한 사람인 강강약약이었기 때문에 그 친구를 일종의 약자로 여겼는지 몰라요. 도움을 줘야 할 대상으로 말이죠. 우린 서로를 다른 의미에서 약자로 여겼던 거예요. 다만 그 친군 강약약강이라 자신에게 약한 저에게 제멋대로 굴기 시작했던 겁니다.

 

처음엔 그 친구를 좀 더 좋은 사람으로 봤지만, 어쩌면 딱 거기까지가 그 친구의 인격이었겠죠. 친구의 태도가 돌변한 것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추측해 봤습니다.

 

자기편이라 안심하면 막 대하기 시작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행동을 해도 상대가 받아주고 떠나지 않을 거라고 믿고, 그걸 확인하면 할수록 더 심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죠.

 

또는 자신의 치부와 깊은 속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쏟아부어놓고는 뒤늦게 현타가 온 것입니다. 그것이 뒤늦게 부끄러워 상대와 멀어지기 위해서 무례하게 구는 것입니다.

 

혹은 모든 걸 다 보여줬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은 잘 보일 이유가 없어서 자기 본연의 성격 그대로가 드러난 것일 수도 있고요.

 

어떤 이유에서든 그 모든 말과 행동이 그땐 저에게 상처를 줬습니다. 아무리 약자라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친구로 둘만큼 전 너그럽지도 어리석지도 않았어요. 절교 선언을 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멀어졌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도 한 번씩 그 친구가 떠올랐어요. 그때 그 친군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어떨 땐 그런 인간의 이중성이 이해가 되기도 하면서 어떨 땐 혐오스러워 견딜 수 없기도 했습니다.

 


 

사회생활하면서 예전에 만났던 저보다 나이가 한참이나(10살 이상) 많은 언니가 있었습니다. 친구는 내가 골라 사귈 수 있지만, 어떤 조직 내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은 나와 잘 맞든 안 맞든 협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힘든 점이 많았지만, 그래도 서로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를 지킨다면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말이 너무 많고 직설적이고 가벼운 말투가 불안해 보였지만, 장점에 집중해보면 또 좋은 점도 많은 언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안은 평화롭기를 원했고, 그에 맞게 행동했습니다. 그 언니가 힘들어하는 일이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도왔습니다. 나름대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죠.

 

그런데 팀으로 협업할 때 인원이 많아지자 삐걱대는 일이 생기더군요. 저는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도 표면적으로나마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그중 언니와 연배가 비슷한 한 사람은 그 언니 앞에서 대놓고 싫은 티를 많이 내더군요.

 

그 사람은 대화의 흐름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 언니에게 종종 쏘아붙이듯 말해서 분위기가 싸해지곤 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겐 또 친절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만큼 그 언니를 싫어했던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그 공격적인 말투에 그 언니는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평소 그 언니 언행으로 보면 대판 싸우고도 남을 것 같았지만, 공격적으로 쏘아붙이는 말에 오히려 설설 기면서 그 사람 비위를 다 맞추고 있더라는 겁니다. 정말 충격적이었죠.

 

두 사람의 대화는 전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게 불안한 시한폭탄 같았죠.

 

그 언니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자니, 정확하게 강약약강이었습니다. 센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겐 한없이 비굴하게, 약한(부드럽거나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겐 오히려 무례하게 굴 때가 많더군요.

 

 

어디서 뺨 맞고 어디서 화풀이한다고, 자기보다 한참 어리고 자기를 공격할 것 같지 않은 저를 결국 타깃으로 삼더군요. 장난이랍시고 쏘아붙이고 삐딱하게 구는 말과 태도에 숨은 그녀의 이중성과 자격지심, 열등감, 질투심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그런 게 차라리 보이지 않으면 그냥 그 사람을 싫어할 수라도 있지, 어떤 날은 그 사람이 불쌍해서 연민으로 가득 차고, 또 어떤 날은 견딜 수 없이 꼴 보기 싫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에게서 친절을 거두었습니다. 그녀는 친절을 받을 자격이 없었으니까요. 제가 업무적인 것 외에는 최대한 말을 아끼고, 절 만만하게 볼 여지를 주지 않자 그제야 슬슬 제 눈치를 보며 다시 잘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속으로 너무 슬펐습니다. 이런 인간은 정말 잘해줄 필요가 없는 걸까? 오히려 처참한 기분이 들었죠.

 

그녀와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법은 그저 냉정하고 차갑게 대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전형적인 사람의 태도 같아서 슬퍼졌습니다. 그런 사람은 슬프게도 사랑과 친절을 줘도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정작 자신을 사랑으로 대하지 않는 사람에겐 비굴하게 굴며 사랑을 애걸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슬펐습니다.

 


 

사실 강약약강인 사람들은 겁이 많고, 사랑이 결핍되어 있고, 불안정한 진정한 약자입니다. 결국은 약자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모질게 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때론 저를 분노케 하고, 상처 주고, 인간 혐오에 빠지게 만들게도 했지만 그래도 생각해보면 불쌍한 인간일 뿐이니까요.

 

저는 왜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이런 사람들 때문에 아프고 슬프고, 이런 비참한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당시에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저 그 연기에 심취해 그 상황극에 더욱 몰입해갈 뿐이었죠.

 

영성적인 측면에서 저를 아프게 한 모든 사람들은 제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제 인생에서 그들의 역할은 매우 컸습니다. 저는 다양한 인간의 마음을 배워야 했고, 감정을 느껴야 했고, 깨달아야 했습니다. 

 

경험하기 위해서 전 그들이 모두 필요했어요. 다양한 사건들과 상처 받을 말과 행동이 필요했습니다. 인간의 이중성을 배울 수밖에 없었던 건, 인간의 일관성을 무엇보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겐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이중성도 존재합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이죠.

 

강강약약으로 살며, 강약약강을 혐오하면 할수록 그건 현실 세계에서 더 많이 체험하게 됩니다. 좋은 것, 싫은 것, 옳은 것, 나쁜 것, 잘난 것, 못난 것 등에 대한 관념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모든 걸 현실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무리는 결국 영성으로 귀결되었는데요. ㅎㅎ 모든 체험이 허용되는 영성적인 측면에선 옳고 그름도 없지만, 에고적인 측면에서 강약약강이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건 사실입니다. 때론 그것이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될 때도 있고요.

 

객관적으로 보면 이해될만한 행동도 자신이 강자에게 당하고 있는 약자의 역할이 되고 보면, 절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 될 테니까요. 인간의 수많은 본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꽤나 힘든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영적으로 많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긴 글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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