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세기의 지성인! 아인슈타인 

원제 : How to Think like EINSTEIN

- 다니엘 스미스 지음 



안녕하세요! 앨리손입니다~


저번 시간에는 아인슈타인의 종교관에 대해서 알아봤었는데요. 오늘은 그의 성장 배경과 인생사, 가치관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1870년 3월 14일 독일 울름, 유대인 아버지 헤르만과 어머니 파울리네 사이에서 태어났고, 2년 후 그의 여동생 마리아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의 집안은 전형적인 부르주아였고 아버지 헤르만은 실력 있는 수학자로 당시 호황이던 전기 산업에 뛰어들어 공장을 경영했으나 사업 수완은 썩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19세기 독일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난 그는 시대적 상황이 그랬듯 늘 따돌림을 당했고, 이는 그의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말이 늦어 가정부로부터 '멍청한 녀석'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들은 말을 몇 번이고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반향어(echolalia: 반향 언어)' 증상까지 보였습니다. 


이는 자폐증의 한 증세로 상대방이 한 말 중 소리를 기억하는 능력은 정상인 데 비해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져 상대의 말을 반복적으로 따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유아의 경우에도 보호자가 한 말을 따라서 하는데, 이는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으로, 정상적으로 말을 하게 되면 이러한 증세는 사라집니다. 


반향어가 자폐증의 한 증세이기는 하지만, 이 증세로 확실하게 자폐증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이런 반향언어 증상 때문에 그는 상당한 따돌림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몽상을 좋아해 늘 얼빠진 모습을 하고 있어 또래 친구들도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5세가 되자 그는 확 달라지는 계기를 맞는데요. 인생을 살면서 전환점을 여러 번 맞이하게 되는데 그의 첫 번째 전환점이 5세라니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신에게도 매우 중요한 순간이겠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더없이 그런 셈입니다. 


여느 때와 같이 얼빠진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있던 그의 주위를 돌리기 위해 아버지 헤르만이 선물을 하나 건네줍니다. 바로 나침반입니다. 어떤 기계적 힘에 의존하지 않고 저절로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을 본 아인슈타인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훗날 아인슈타인은 이때를 회상하며 '몸이 으스스하게 떨려왔다.' 라고 묘사했습니다. 그에게 이 나침반은 보이지 않는 힘의 물리적 효과를 명확하게 감 잡을 수 있는 대상이었던 것이죠. 그때부터 그는 우주를 관장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매료되기 시작했습니다. ( p.18~20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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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시간에 그는 물리학 뿐만이 아니라 철학, 음악, 예술, 심리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심리학자이자 의사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는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명랑하고 자신감 있는 겸손한 사람이다. 내가 물리를 이해하는 만큼 그도 심리학에 조예가 있었기에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즐거웠다." 프로이드와 아인슈타인이 서로의 전문 분야인 심리와 물리에 대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꽤 신선하고 재밌다는 생각이 듭니다. ( p.10 참고 )


아인슈타인이 10살 무렵부터 그의 가족은 유대인 관습에 따라 매주 목요일 가난한 의대생이던 막스 탈무드를 식사에 초대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인슈타인보다 무려 11살이나 많아서 그를 또래 친구처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은 금세 죽이 맞아 친해졌습니다. 


탈무드는 자신의 과학 서적을 아인슈타인에게 꾸준히 가져다주면서 아인슈타인이 가진 끝없는 지식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탈무드는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수준을 뛰어넘었음을 알 수 있었죠. 그때부터 수준을 조금 더 높여 칸트부터 흄, 마흐 등에 이르는 철학 서적을 소개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실재는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등 심도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평생 업적을 이루는 기반이 되어 주었죠. 탈무드와 함께 지내며 아인슈타인은 마음 맞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와의 우정을 지적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 p.47 참고 )




"나는 물리학자가 아니었으면 난 음악가가 되었을 것이다."
(1929년) 



"음악이 내 연구 활동에 영향을 미친 건 아니지만, 음악과 과학에 대한 나의 열정은 동일했으며, 서로가 주는 만족감이 서로를 뒷받침해 준다."라는 말도 했었죠. 1929년 G.S 비렉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종종 음악 속에서 생각합니다. 음악 속에서 몽상을 해요. 내 삶을 음악으로 봅니다. 바이올린 연주를 하며 삶의 가장 큰 기쁨을 얻습니다." ( p.141,143 참고 )


그는 자기 자신을 '과학자'로 한정하지 않았으며 "위대한 과학자는 곧 예술가이기도 하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비렉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상상력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가와 진배없다." 그는 분명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남긴 물리학자이지만, 과학이 철학, 음악, 예술, 심리 등과 전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본질은 같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겠죠. ( p.40 참고 )



"나는 어떤 특출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단지 호기심이 무궁무진할 뿐이다." (1952년) 



말년에 그가 적은 한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었는데요. "내가 이룬 과학적 성과는 단지 자연의 비밀을 이해하고픈 못 말리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지 다른 특별한 동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1920년 아인슈타인의 초기 자서전 출판을 도맡은 친구 알렌산드로 모슈코프스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순수 지식을 충족시키고픈 나 자신의 확신이 과학적 발견을 가능케 했다." 


1918년 친구 하인리히 창거에게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과학적 사고의 가장 큰 의의는 외부적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가 주는 즐거움, 그 자체이다." 그가 말하는 호기심과 욕심은 참으로 순수한 동기입니다. 그런 순수한 목적으로 목표를 향해 갈 때,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합니다. ( p.23 참고 )



"상상력은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 지식은 한계가 있지만, 상상력은 온 세상을 품을 수 있다." (1929년)



그의 가르침을 받던 취리히 대학교 학생들은 "아인슈타인 교수는 이론 물리학의 가장 어려운 문제를 너무나도 명쾌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수업을 정말 재미있게 진행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형성할 줄 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나는 말로 생각하지 않는다. 먼저 생각이 떠오르면 후에 이를 말로 풀어보는 편이다." 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1945년 수학자 자크 아다마르가 집필한 '수학자의 생각'에 보내는 기고문에서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죠. 


"단어나 언어는, 말이든 글이든 나의 사고 체계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내 사고 체계 내에서 분명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어떤 정신적 요소가 있는데 이들은 저절로 다시 재생산되거나 결합된다. 내 경우 이 요소들은 주로 시각적 혹은 근육적 형태를 띤다." 그는 수학 공식을 '보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의 제자에 따르면 그는 추상적 수학 공식을 보며 물리적 실체에 감을 잡았다고 합니다. ( p.38~39 참고 )



에세이 <물리학에서의 귀납과 연역> 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자연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뤄낸 위대한 진보는 귀납법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어떤 사실로 구성된 집합체의 본질에 대해 직관적인 감을 잡아 아직 입증되지 않은 법칙의 가정이 형성되며, 이러한 법칙을 토대로 결론이 나온다." 


귀납법은 실험을 통해 수집된 사실을 바탕으로 일반 원칙을 도출해 내는 방법을 뜻하는데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모든 과학자들이 이 귀납법과 연역법을 적절히 섞어 사용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추상적인 개념을 머릿속에 먼저 떠올린 후 객관적인 입증 과정을 거치는, 직관을 사용해 위대한 발견을 이뤄내는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 p. 31~32 참고 )



그는 인류 역사상 사고 실험(독일어로는 Gedankenexperiment, 게당켄 실험이라 칭함)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사고 실험이란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물리적 증거가 없는 어떤 아이디어나 가정의 결과를 상상을 통해 현실화해 보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데카르트나 갈릴레이, 라이프니츠, 뉴턴 등 여러 과학자 및 철학자들에 의해 널리 사용된 유서 깊은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어느 한순간에 오는 깨달음, 그건 마치 황홀경 같다. 그렇게 떠올린 생각은 이후 실험이나 분석을 통해 검증되기도 하고 그냥 무산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상상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p.42~43 참고 )



그는 이론 물리학과 인도주의라는 두 개의 구분된 영역에서 명망을 얻은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상당 기간 이 두 가지 영역을 구분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뤄낼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 정치적으로 가장 추하게 남용되는, 원자 폭탄이 제조되고 무분별하게 확산된 모습을 지켜본 그는 그렇게나 떨어뜨려 놓고 싶던 두 영역이 결국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단 걸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발견으로 핵폭탄이 제조되기 훨씬 전부터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1948년 <뉴욕타임스> 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요. "우리 과학자들은, 더 섬뜩하고 더 효과적인 소멸 수단을 만드는 데 일조한 비극적 운명을 가진 우리는, 잔인한 목적에 쓰일 무기를 개발하고 사용하는 걸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엄중하고 방대한 의무를 준수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229~230 참고 )



아인슈타인은 본인도 인정하듯 자신이 그리 쉬운 사람은 아니었음에도 인종, 사회적 지위 및 성별에 관계없이 두루두루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전 세계적 유명 인사가 된 후 엄청난 인맥을 (뜬금없는 인맥 ex. 찰리 채플린) 쌓아가면서 동시에 그냥 평범한 사람이던 시절에 만난 이들과의 우정도 계속 이어갔다고 합니다. ( p.50 참고 )


1910년 후반부터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와 인맥을 쌓아 나갔지만 이런 인맥이 자신의 이론 연구에 상당한 지장을 준다는 점을 이내 깨달았고 세간의 시선을 벗어나 조용한 구석에 앉아 묵묵히 연구에 몰두하기를 무엇보다 원했다고 합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하는 마음이 주기적으로 밀려왔습니다. 


1933년 런던에서 그는 '고즈넉하고 단조로운 삶' 이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며, 등대지기야말로 이론과학자에게 딱 맞는 직업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과학은 온전한 집중력을 요하는 따분하고 외로운 일이었지만 연구에서 얻는 기쁨은 그 모든 단점을 만회할 만큼 가치가 있었다고 합니다. ( p.105~~106 참고 )




그에겐 두 아내와 여러 자녀가 있었고, 수차례 외도를 했을 뿐만 아니라 늘 주위에 친구들이 바글바글했다고 합니다.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양자 이론을 놓고 자주 옥신각신했던 막스 보른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참 상냥하고 사교적이며 인간미도 있지만 자기 주변 환경 및 그 안에 속한 사람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사람이다." 라고 말한 묘사가 가장 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 


말년에 그는 아내와 더불어 비서 헬렌 듀카스와 여동생 마야, 수양딸 마르고트와 함께 살았는데 마야와 마르고트는 자신의 남편보다 아인슈타인과 시간을 보내는 걸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누구와 함께 사는 걸 예전만큼 꺼리지 않았고 젊은 날에 비해 상당히 너그러워진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와 함께 사는 사람들 역시 애초에 아인슈타인에게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고 합니다. 1949년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에세이 <왜 사회주의인가?>에서 이렇게 서술했죠. '인간은 고독한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 존재이다.' 아인슈타인에게 더없이 맞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 p.110, 113 참고 )



그는 물리학자로서 또는 남편이나 아버지로서 완전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가 남긴 업적에 오류도 존재하며, 절대 원치 않았던 부정적 결과도 초래했습니다. 수차례 외도와, 혼자만의 연구 시간에 몰두하는 생활이 가족의 입장에서는 참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아인슈타인이 항상 존경받는 이유는 그가 이뤄낸 업적뿐만이 아니라,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르는 순수한 열정과 그 모든 과정을 즐길 줄 아는 넓고 깨어있는 사고방식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저 역시 그런 면에서 아인슈타인을 정말 존경합니다. 


이렇게 두 편으로 나누어 추천도서 아인슈타인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쓰다 보니 이번 글은 너무 길어진 것 같네요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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