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밤 서울에서 내려와 집으로 오는 길, 비는 추적추적 잘도 내린다. 2박 3일 빠듯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으니 피곤해서 뻗어 잘 법도 한데, 잠들기 싫은 이 기분은 뭘까? 괜히 책상 앞에 앉아 본다. 3일 동안 하루는 가족과 보내고, 하루는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고, 하루는 혼자서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아, '정처 없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발길이 닿는 대로 무작정 갔던 것은 아니다. 나는 목표지점을 정했고, 그곳으로 갔을 뿐이다. 마음이 정하는 그곳으로... 이번 일정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났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났다. 뭐 이런? ㅎㅎ
만나야 할 사람들이라고 하니, 꼭 무슨 의무감같이 느껴진다. 만나야 할 사람들이 곧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여하튼 혼자 돌아다닌 일요일, 내 발길은 무작정 그곳을 향한다. 뭔가 이 애매모호한 상황에 종지부를 찍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귀에서는 BGM이 계속 흘러나오고,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을 잠시나마 만끽한다.
근처를 배회하다가 잠시 벤치에 앉아, 앞에 보이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화단에 초록 초록한 나무와 꽃들을 보며 기분 좋게 설레며, 또 한편으론 두려운 마음도 올라온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멍하게 지켜본다. 어떤 남자가 나와서 화단 앞에서 담배를 피운다.
음.. 이 앞에서 사람들이 담배를 많이 피겠구나. 이 화단의 꽃들은 담배 연기를 많이 마셨겠구나... 사람들은 왜 담배를 피우지? 우리 아버지도 끊었다가 다시 피우는 담배. 담배는 왜 필까? 끊지 못해서 필까?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대체 얼마나 불안한 걸까? 담배가 그들의 인생에 얼마나 위안이 되는 걸까?
예전에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담배를 피우던 그 친구는 자기가 피우던 담배를 내게 건넸다. 나는 그렇게 담배를 받아서 한 모금 빨고 친구에게 돌려준다. 미안해서 기침조차 할 수 없었다. 그 한 모금이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담배다.
나는 그렇게 남자들이 번갈아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 걸 본의 아니게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건다. 듣고 있던 노래를 끄고 싶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음악을 끈다. 어떤 남자가 나를 유심히 관찰하며 말을 건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읊어대기 시작한다.
지금 공짜로 사주와 관상을 봐주시는 건가요? 어쩜 이렇게 고마울 수가..;;; 나 역시 오랜 시간 종교를 믿었고, 명상과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 하지만 길에서 무턱대고 포교활동을 하는 다양한 종교들을 만나는 게 이젠 너무 지겹다. 분명히 내 인생은 영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긴 하다.
이런 사람들을 지겹도록 너무 많이 만났고, 과거에는 실제로 따라가서 경험도 할 만큼 충분히 했다. 이번엔 또 어디서 나오셨나? 묻기도 지겹다. 가던 길이면 그냥 대꾸를 안 하고 빠르게 걸어가버리겠는데, 나는 지금 이곳에서 자리를 뜰 수가 없다. 이 사람이 대충 얘기하고 가 줬으면 한다.
나는 길에서 만날 법한 아는 종교 이름을 다 대보며 묻는다. 그는 아니라고 그냥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밤에 꿈을 꾸고 이곳으로 왔고 나를 만났다고 한다.
얼핏 보면 도도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마음 그릇이 넓고, 따듯한 사람이란다. 내가.
흙 속의 진주인데, 아직 흙 속에 있는 게 안타깝다고 한다. 내가.
모든 걸 너무 잘 참고 견디는 게 병을 만든단다. 내가.
집안에서 맏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단다. 내가.
콧볼에 재물복을 타고났단다. 내가.
주위에 사람은 참 많은데, 필요할 때 쓸 사람은 적고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단다. 내가.
나에 대해서 어쩜 이렇게 잘 아실까? 그래요, 대충은 다 맞았어요. 그런데 함정은 이런 말은 누구에게 끼워 맞춰도 대충은 다 맞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가만히 다 듣고 나서, 질문 몇 개를 던졌다. 그러자 그는 대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대답은 어느새 고민 상담으로 이어진다.
이분은 본인의 신분을 망각한 채, 내게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내가 엠패스(empath, 엠파스)인 걸 귀신같이 아는 걸 보니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은 맞구나 싶었다;;; 그는 나를 만나기 위해 여기 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기 온 게 아니다. 나는 적당히 대화를 끊으려 했다.
그는 함께 차를 마시러 가자며 보채기 시작한다. 도대체 이 사람의 목적은 뭐지? 나는 거절하고 또 거절하고, 또 거절하고 결국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정말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맘으로 그곳에 갔는데 내가.. 하지만 그가 떠나지 않으니, 내가 벗어날 수밖에....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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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대교를 향해 발길을 돌린다. 가뜩이나 우중충한 날씨에, 그 사람이 읊어대던 말들이 머릿속을 잠시 어지럽힌다. 하지만 잠시 잠깐일 뿐이다. 또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오늘도 종지부를 못 찍는 것인가? 사실 종지부 찍기 싫은 거잖아 안 그래? 물론이야. 싫지...
먹구름 가득한 하늘, 차갑게 휘몰아치는 강바람, 샤랄라 한 원피스를 입기에 딱 좋은 날씨지;; 맨 다리가 너무 시리다. 오른쪽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아, 물론 슬퍼서 나오는 눈물은 아니다. 너무 추워서 눈물이 저절로... ㅠ_ㅠ 닦아도 닦아도 눈물이 계속 나온다. 한쪽 눈에서만... 뭐지 웃기게.. ㅋㅋㅋ
역시 멋부리다가 얼어 죽는 건 멋쟁이의 특권이지 암요!! 이렇게 추위에 달달 떨고 떨었지만,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도 면역력 타고난 건강 체질 덕분이다. 면역력에 강철 체력까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포대교는 야경이 더 예쁘지만,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걷기에도 참 딱이야. 글귀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며, 마음에 담으며 걷고 또 걷는다. 걷는 게 좋아. 걷는 건 자신 있어. 신발만 편하다면 지구 끝 어디까지라도 걸어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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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은 바람에 미친 듯이 산발이 되었지만, 어지러운 내 마음만 하겠어? 괜찮아. 바람아 불어라~ 바람은 불고, 또 언젠간 그치겠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UP and DOWN이 반복되는 게 인생이지. 그런 거지..
그래요, 나는 관상이 참 좋습니다. 인복, 식복, 재복을 타고났어요. 나는 뭘 해도 되는 사람입니다!! ㅎㅎ 나는 나를 믿어요~!!
"현명한 용기 가득 두 눈"에 너를 담아 둔다-
"곧게 뻗은 잘 생긴 눈썹" 은 네 눈썹~
이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결핍은 또 다른 결핍을 창조할 뿐이라는 진리를 내 입으로 누누이 말하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갈구하고 갈구하며 집착 아닌 집착을 하고 있었다. 바라는 것이 많으면, 결코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
오늘의 결론, 마음을 비우고,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할 것!!
감사하는 마음이 온몸과 마음에, 온 우주에 충만함을 느낄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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