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의 꿈 일기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며  쫓기고 도망치는 꿈 1 


꿈을 기억해내고 정리해나가는 과정은 어릴 때부터의 오랜 습관이다. 이렇게 꿈 일기를 쓰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일기를 매일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기를 쓰지 않는 것 같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특별한 일이 있었던 날만 기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꿈 일기 역시 마찬가지다. 


심리적인 원인으로 꾸게 되는 심몽이 대부분이라 나를 온전히 바라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예지몽을 꾼다. 꿈을 통해 미래에 일어날 일과 몰랐던 사실들, 몰랐던 사람들을 알게 되기도 한다. 영감이 필요할 때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얻을 절호의 찬스가 되기도 한다. 


물론 뒤죽박죽 정신없이 흘러가는 꿈속에서 그걸 캐치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또 때로는 자각몽(루시드 드림 Lucid dream, Lucid dreaming)을 꾸기도 한다. 자각몽을 통해 나를 온전히 바라보고 두려움의 실체를 파악하고 치유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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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몽으로 예지몽을 만들기도 하고, 영감을 얻기도 하고, 여러 가지 내게 필요한 스킬을 훈련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각몽을 그렇게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자각하는 꿈을 많이 꿔야 가능하다. 


자각몽 자체가 수면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무분별한 사용으로는 그런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어떤 이유보다 꿈을 꾸는 모든 과정이 너무 생생하고, 재미있고 즐겁기 때문이다. (악몽도 예외는 아니다.) 앞선 모든 이유가 없다 하더라도 이 이유 하나만으로 꿈 일기를 기록하기에 충분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생하게 꿈을 꾸지 않고, 상당 부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안다. 꿈이란 그저 잠잘 때 잠깐씩 떠오르는 기억, 흐릿하게 지나가는 장면쯤으로 남는 것 같다. 혹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꿈을 꾸지 않는 밤은 상상할 수 없고, 지금처럼 평생 이렇게 꿈속을 여행하고 싶을 뿐이다. 서두가 너무 길었다. 꿈 이야기로 들어간다.


2018. 12. 02. 일


늘 그렇지만 너무 많은 꿈을 꿔서 내용은 뒤죽박죽이다. 복잡하게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나가듯 하나씩 정리하며 스토리를 완성해나가는 맛에 꿈 일기를 쓴다. 장소는 나의 모교인 초등학교 운동장이다. 이곳은 꿈 배경으로 자주 나오는 곳이다. 


학교에 무슨 행사가 있는지 운동장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고, 나도 그 사이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 자유롭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있던 중, 갑자기 이곳의 공기가 전혀 달라지는 느낌이다. 사람들이 여러 명씩 줄을 맞춰 서서 어딘가로 가고 있는데, 어째 끌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서 어디로든 도망을 쳐야 할 것 같은데 주위를 둘러봐도 피할 곳이 전혀 없다. 어느새 나 역시 강제로 그 행렬에 합류하게 되고, 같은 줄의 옆 사람을 보니 처음 보는 얼굴의 여자가 서 있다.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모르는 사이지만 너무 두려운 마음에 서로 손을 꼭 잡는다. 



우린 두려움에 떨고 있다. 도대체 우린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 걸까? 우린 왜 잡혀가고 있는 거지? 여긴 어디? 이 사람들은 누구? 혼란 속에 두려움은 최고조로 달한다. 


우리를 끌고 가고 있는 사람은 일본군이다. 하... 일본군이 나오는 일제시대 꿈을 종종 꾼다. 내가 겪은 적이 없는 일이지만, 실제로 겪은 일처럼 생생한 공포와 고통을 느끼는 꿈을 가끔 꾸게 된다. 이건 마치 유전자에 각인된 정보 같기도 하다. 


끌려가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다.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 사람들은 폭행을 당하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한복을 입고 있고, 나 역시도 한복 차림이다. 그런데 어느새 저고리는 없고, 치마만 입고 있다. 한여름도 아닌데 어깨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수치스럽게 느껴진다. 


그건 더워서 우리가 스스로 벗은 게 아니라는 뜻이다. 한복의 치맛자락을 만져보니 고급 원단이다. 풍성하고 우아한 치맛자락을 끌며 비참하게 연행되고 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라도 연행되는 그 길은 엄청나게 멀고 험하다. 과거와 현재의 이곳저곳을 오가며 계속 끌려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현대의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행렬에서 탈출한 것인지 함께 있던 여자와 단둘이다. 우린 잡힐세라 다급하게 건물 위로 깊숙이 들어간다. 그렇게 한참 도망쳐 들어온 곳은 어느 실내 공연장이다. 나는 객석의 맨 뒤에 서 있고 저 밑의 무대는 텅 비어 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인지 객석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객석의 경사가 가파르고 열이 2개밖에 없는 소규모 공연장이다. 200석 정도밖에 돼 보이지 않는다. 어디 앉아도 잘 보이는 사석이 없는 공연장이다. 누구의 공연일까? 나는 객석을 살피기 시작한다. 


거긴 내가 좋아하고, 전 국민이 좋아하는 축구선수 한 명도 앉아 있다. 그 순간 꿈이라는 걸 자각한다. 이 꿈을 어떻게 설계할까, 뭘 해볼까 잠깐 고민한다. 하고 싶은 여러 가지가 떠오르고, 불러내고 싶은 사람이 여러 명 떠오른다. 우선은 이 공연을 시작하게 했어야 하는데... 아님 내가 공연을 하든가 ㅋㅋ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스치면서도 나는 계속 객석의 사람들 얼굴을 살핀다. 한 명 한 명 눈에 담는다. 아는 얼굴은 거의 없고,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너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다들 누구지? 계단을 계속 내려가며 객석의 사람들을 보던 중, 복도에 서 있는 어린 소년을 본다. 


7살 정도 되어 보이는 혼혈 남자아이다. 그 아이는 불어로 말을 시작해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말하고 있다. 유창한 말솜씨를 구경하다가 나중에는 아이가 시를 읊고 있음을 알고, 나도 함께 읊는다. 끝이 나자 나는 yeah~ 하고 아이와 하이파이브를 한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꼭 안아준다. 


내려왔던 계단을 따라 다시 올라간다. 객석 맨 뒤로 가서 나가기 위해 문쪽으로 간다. 그때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어두운 구석에 함께 있었던 그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 있다.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으면 일찍 나올걸.. 미안한 생각이 든다. 


손을 내밀어 그녀를 일으켜 세운다.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와 우린 계속 걷고 또 걷는다. 여긴 또 어느 시대인지 모르겠는데, 황무지의 거친 흙길을 걷고 있다. 우린 제법 지친 것 같다. 그때부터 뭔가 또 공기가 바뀌고 있는 느낌이다. 장르가 판타지+호러+스릴러 같다. 


좀비, 요괴, 괴물들이 등장하고 우리가 탈출한 행렬을 다시 만나게 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사람들이 괴물들에게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선혈이 낭자한 영화는 가장 싫어하는 장르이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모두 고문당하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로 아비규환이다. 


멘붕상태로 우린 꼼짝도 못 하고 서 있는데 그때 그 괴물들 사이에서 꽤 낯익은 얼굴이 보이고 우리를 향해 걸어온다. 배우 현빈이다. 하... 그를 꿈속에서는 만나고 싶지 않다. 


그의 영화 드라마를 거의 다 보고, 그의 연기를 좋아하지만 종종 꿈에서는 악역 중에 악역으로 등장하곤 한다. 그는 나를 괴롭히거나 죽이기 위한 역할만 맡는다. 꿈에서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반사적으로 공포를 느낄 정도로 말이다. 꿈 이야기가 너무 길어서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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