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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장/DREAM TRAVELER

거울꿈 거울보는꿈, 모순과 이질감을 느끼는 억압된 감정꿈

by 앨리Son 2021. 3. 28.

 

한 편의 영화처럼 긴 꿈은 토막을 내어 해몽, 꿈분석하는 게 맞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글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는 건 좋지 않다는 걸 알지만, 역시 나는 꿈해몽보다는 쭉 이어지는 꿈의 스토리가 좋을 뿐이다.

 

절반 이상 내용을 생략하고 올릴까 하다가 기억나는 전문을 모두 올린다. 이렇게 긴 꿈은 제목을 정하기가 너무 어렵다.

 

하지만 다행히 길게 이어지는 꿈속에서 느껴지는 공통점이 있었으니, 모순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거기서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 모든 건 내면에 깊이 억압된 감정이 수면 위로 떠올라온 것이다.

 

그것이 커다란 전신 거울을 보는 행위를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이 꿈에서는 그런 장면이 2번 나온다.

 

 

 


거울꿈 거울보는꿈

모순과 이질감을 느끼는 

억압된 감정꿈


 

거울꿈, 거울보는꿈은 비교적 자주 꾸는 편이다. 작은 손거울을 보는 일은 없고, 항상 전신 거울 앞에 서는 꿈이다. 명상, 마음공부를 오래 해온 사람이라면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일이 일상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꿈에서도 내면을 깊이 들여다본다.

 

 

꿈에서 거울을 보고, 현실과 똑같이 내 모습을 그대로 비춘 적이 있던가? 내 기억엔 없다. 전혀 다른 모습의 누군가가 서 있거나, 내면 깊이 억압된 무언가가 드러나거나, 마녀의 수정구슬처럼 먼 미래와 과거의 장면을 비추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꿈속에서 거울을 마주한다는 건 살짝 긴장되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앨리의 꿈 이야기   2021. 03. 10. 수

 

현실에서 인스타그램을 안 한 지 반년은 넘은 것 같은데, 새로운 게시물 하나를 올리는 꿈을 꾸게 된다. 

 

산속에서 어떤 낡고 오래된 트럭 (고전 외화에서 나올법한) 뒤에 앉아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우리 앞에는 커다란 주전자 하나가 놓여있는데, 시골에서 어르신들이 일하다가 새참 드실 때 마시던 막걸리가 들어있을 법한 느낌이다.

 

하지만 사진의 주전자에는 "maxim"이란 태그가 붙어있다. 그러니 이 안엔 맥심 믹스 커피가 한 주전자 가득 들어있는 것이다. 사진 자체도 우스꽝스럽지만, 그 아래 내용은 더 가관이다. 

 

마치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에서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것 같이 허세 작렬하는 오글거리는 내용을 써놓은 것이다. SNS의 모순적인 단면을 풍자하는 이 게시물에 사람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런 걸 좋아하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난 그 친구와 함께 사진 속 그 낡은 트럭 뒤에 앉아 있다. 우리 앞에 놓인 주전자 뚜껑을 열어보니 정말 믹스 커피가 가득 들어있다. 아마도 우린 사발에 막걸리를 마시듯 그 맥심 믹스 커피를 나눠 마신 모양이다. 대체 이 웃긴 상황은 뭔지!! ㅎㅎ

 

그 산속엔 우리만 있는 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캠핑을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소란스러워지더니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한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하는 급박한 순간이다. 저 멀리 하늘에서 전투기, 헬리콥터 소리가 난다. 이 트럭은 그 친구의 차인 듯해서, 나는 얼른 조수석에 올라탄다. 그리고 친구가 빨리 운전석에 앉길 기다린다. 

 

그런데 이 친구는 계속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차에 오르질 않는 것이다. 빨리 타라고 소리쳤지만, 여전히 다른 곳을 헤매고 있다. 볼일이 급해서 저러나 싶어서 "빨리 타!! 급하면 차에다 싸라고! 지금 시트를 적시는 게 문제가 아니라고!!"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게 주위를 살피며 나보고 먼저 가라는 말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린다. 왜 같이 갈 수도 있는데, 같이 도망쳐서 같이 살 수도 있는데, 도대체 너 왜 그러는 거야? 우리 같이는 안 되는 거니?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그 행동에 실망할 여유조차 없다.

 

힘든 순간을 함께 헤쳐나가지 않고, 어떤 이유에서든 사라져 버리는 사람은 실망스럽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어떤 이유에서든 그렇게 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린 서로 같은 생각을 하면서, 서로를 오해하고 있다.

 

서로를 좀 더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한데,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을 거라고 단정 지어 버린다. 왜? 서로 너무 지쳤기 때문에...

 

 

 

전투기와 헬리콥터 소리가 바로 위에서 들려온다. 사람들은 이미 모두 자취를 감추고 없다. 하늘에서 당장 뭐가 날아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얼른 피해야 한다. 

 

트럭을 몰고 달리기 시작하는데 산의 측면을 깎아 차 한 대가 겨우 아슬하게 지나갈 수 있는 꼬불꼬불한 천 길 낭떠러지 길이다. 아차 하면 골로 가는 그 좁고 아슬한 길을 전력 질주하고 있다.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서 죽으나 전투기 폭격에 맞아 죽으나 매한가지란 생각이다. 

 

 

그렇게 달려 깊은 산속에 숨겨진 은밀한 장소에 도착한다. 아마 사람들도 이곳으로 다 모였을 것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마치 공사를 하다 중단한 것 같은 콘크리트 벽면이며 천장이 보인다. 

 

심지어 바닥엔 물이 발목 정도까지 찰랑찰랑거리고 있다. 이곳을 수영장으로 쓸 생각인지 어디선가 물을 틀어놓은 소리가 들린다. 발목까지 오는 롱 시폰 원피스를 입고 있던 나는 치마를 걷어올릴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이미 젖어서 질척대고 있다.

 

그렇게 물속을 걸어서 창문 앞으로 다가간다. 크고 낡은 창문은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좀 뿌옇긴 했지만, 밖을 내다보는 데는 지장이 없다. 창밖의 날씨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정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밝고 아름답다.

 

꿈에서 문과 창문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연결된다. 꿈에서 문과 창문을 만나면 무조건 통과해서 지나가야 한다.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니까... 그 멋진 기회를 놓치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다.

 

이 창을 열고 나가볼까 생각하는 순간 뒤쪽 멀리에서 인기척이 들려 몸을 돌린다. 저 멀리서 남자 한 명이 다가오고 있다. 그때 내 손에 물이 나오는 호스가 쥐어져 있는데 엄청난 수압의 물이 그 사람을 향해 발사된 것이다.

 

그 사람의 얼굴 형체가 보이지 않을 만큼 먼 거리였지만 강한 수압으로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었다. 이 호스가 왜 갑자기 내 손에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을 향해 일부러 조준한 것도 아닌데 정확히 그 사람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너무 당황해서 손에서 호스를 놓아버리고 다가가서 사과를 하려고 하는데, 멀리서 봐도 엄청 화가 난 것 같은 남자는 똑같이 물 호스를 들고 내게 겨누었다. 피할 겨를도 없이 그 강한 수압을 정통으로 맞았다. 가슴 정중앙에...

 

이건 뭐 가슴 차크라가 활짝 열리다 못해, 뻥 뚫릴 지경이다. 그 강한 수압을 정통으로 맞은 나는 뒤쪽 창문이 있던 벽으로 밀려 등을 세게 부딪힌다. 아마 창문을 향해 이 물을 계속 쏘아댄다면 창문이 깨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남자가 거기를 맞으면 말도 못 하게 고통스럽듯이, 여자도 가슴을 맞으면 다른 부위보다 더 아프다. 팔이나 엉덩이를 맞는 것과는 다르단 말이다. 학창 시절 농구나 배구 경기를 하다가 공에 가슴을 맞아본 경험이 있다면 그 고통을 잘 알 것이다. 여자의 가슴 살은 쿠션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두 팔을 교차시켜 가슴을 감싸 안고 손으로 어깨를 꼭 붙잡고 고통스러워한다. 신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얇고 하늘거리는 원피스가 순식간에 흠뻑 젖어 몸이 적나라게 드러나 수치심에 더 몸을 감싸 안은 것이다. 의도야 어떻든 남녀가 서로를 흠뻑 젖게 만든 이 상황은 아마도 어른이라면 다르게 해석 가능할 것이고, 그게 맞을 것이다.

 

그런 나를 향해 화나서 흥분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다. 실수를 해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이 정도로 복수했으면 됐지 왜 또 이쪽으로 오는 거야!? 어쩌자고? 언젠가부터 꿈속에서 좀 겁쟁이가 된 것 같다. 어릴 때 꿈에선 겁 없이 잘 싸우고, 죽이는 것도 마다치 않았는데 말이다. 

 

몸을 돌려서 창문 쪽을 바라본다. 이걸 열고 밖으로 당장 날아갈까?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야. 이곳을 빠져나가면 그만이야. 하지만 내 몸은 그대로 굳은 채 어떤 액션도 취하지 못한다. 갑자기 달려오는 차 앞에서 사람이 피하지 못하고 몸이 굳어버리는 것과 같이...

 

등 돌리고 서 있는 내게 그는 가까이 다가와 밀착한다. 흥분해서 씩씩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굉장히 차분해 보이는 한 남자가 내 등 뒤에 서 있는 것이다. 서로의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그 짧은 정적의 시간이 숨 막혀온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반쯤 돌려 그 얼굴을 본다.

 

 

 

오... 글렌! 미드 워킹데드의 글렌 리(Glenn Rhee).

 

지난 글에서 뒤늦게 워킹데드를 몰아 보고 글렌과 글레기(글렌+매기) 커플에 푹 빠져있다고 쓴 적이 있다. 워킹데드를 다시 돌려보며, 몇 달째 글렌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이다. 

 

글렌 꿈 정말 꾸고 싶었는데 역시 내 꿈에 첫 등장부터 강렬하구나. 가슴에 구멍을 내버리다니... 글렌의 죽음 후에 가슴에 구멍이 뚫려서 한동안 먹먹했다고 했는데, 딱 그 느낌 그대로 내 가슴에 구멍을 내버렸어. 

 

배우 스티븐 연이 글렌이고, 글렌이 스티븐 연이라 둘 다 좋은 건 맞지만 그래도 내가 지금 정말 사랑을 느끼는 건 글렌이란 캐릭터이다. (물론 스티븐 연의 다른 작품과 관련 인터뷰 및 영상을 모조리 섭렵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난 원래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깊이 몰입을 잘하고, 그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는 일도 잦은 편이다. 캐릭터에 대한 사랑이 그 배우와 연결되어 덕질을 하기도 하지만, 그건 비교적 유효기간이 짧은 반짝 덕질이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몇 달째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꿈에서 그의 모습은 워킹데드 초반의 그 애기애기하던 모습이 아니라 뒤로 갈수록 전투력이 레벨 업된 멋있고 섹시한 모습이다. 점점 갈수록 귀여움과 함께 웃음도 잃어가는 게 아쉽긴 하지만, 글렌에겐 꼭 필요한 성장이었으리라.

 

 

 

글렌은 정말 귀엽고 섹시하다. 귀여움과 섹시함을 동시에 지닌 사람은 참 드문데, 어쩜 글렌은 분노하는 것도, 때 꼬질꼬질 더러운 것도, 눈물 흘리는 것도,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피 흘리는 것 마저도 섹시하고 사랑스러운지... 그의 영화 메이헴(Mayhem, 4월 8일 개봉 예정)을 통해서도 그렇게 느꼈다.

 

피 흘리거나 폭력적인 영화라면 질색팔색을 하던 내가 이런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것도 다 그의 뛰어난 연기력 덕분이다. 멀쩡한 남자를 보고선 섹시하다고 느끼지 못하면서, 더럽고 추하고 고통스러워하거나 폭력적이거나 피 흘리는 모습에 섹시함을 느낄 때는 내 안의 잠재된 변태적 성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아마도 그런 것들을 매우 나쁘고 싫은 것으로 분류해놓고 억압해두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억압하면 억압할수록 그건 더 강렬하게 수면 위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의도야 어찌 되었든 너무 강하게 부정하면, 그건 곧 긍정이 되어버린다.

 

 

 

다시 꿈으로 돌아와, 글렌은 내게 사랑하는 연인이자 아내인 매기를 대하듯 부드럽고 다정한 태도를 보인다. 젖은 내 어깨와 팔을 부비부비 해주기도 하고, 젖은 머리칼과 뺨을 부드럽게 만지기도 한다. 달콤한 연인의 행동처럼 말이다.

 

내게 물을 쏜 건 완전한 실수였다고,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너무 미안해하며 사과하고 있다. 물론 그는 영어로 말하고 있었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 달콤하고 부드러워서 햇살 화창한 봄날 예쁜 나비의 보드라운 날갯짓을 보는 기분이다. 그의 숨소리가 내 목덜미를 계속 간지럽힌다.

 

방금 전까지 누군지 모를 남자가 흥분해서 씩씩대며 다가올 때는 너무 공포스러웠는데, 똑같은 장소에서 한순간에 천국에 와 있는 기분이 드는 것 역시 이질감이 느껴진다.

 

 

이렇게 상처 받은 강아지 같은 눈빛으로 열심히 해명할 때는 키스로 그 입을 막아버리는 게 최고다. 매기처럼... (매기 너무 멋있쪄~) 뒤돌아서 당장 키스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나는 이 꿈의 흐름에 자연스레 모든 걸 맡긴다. 지금은 내가 푹 빠져있고, 지금 내겐 가장 사랑스러운 남자 캐릭터 글렌이라서 그의 모습을 잠시 빌렸을 뿐이다.

 

그때 오른쪽 옆을 보니 한 벽면 전체가 거울이다. 앞서 말했듯 거울꿈 거울보는꿈을 비교적 자주 꾸는 편인데, 꿈에서 거울을 보면 온전한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꿈에서 거울을 본다면 현실보다 더 많은 걸 보게 될지도 모른다. 현실에서의 거울 명상처럼.. 거울 명상은 내면에 억압된 감정을 인정하고 풀어내 주는 작업이다.

 

꿈에서 거울은 자신의 깊은 내면을 비추기도, 과거의 한 장면을 회상하기도, 미래에 일어날 일을 보기도,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어떤 메시지를 보여주기도 할 것이다. 꿈속 거울을 통해 전생을 여러 번 보기도 했다.

 

다시 꿈으로 돌아와, 나는 거울을 통해 우리 둘의 모습을 함께 관찰한다. 흠뻑 젖은 남녀가 서로 같은 방향으로 서 있고, 남자가 백허그를 하고 있다. 수치심과 동시에 묘한 흥분을 느낀다. 여자가 입은 자잘한 꽃무늬 원피스는 "작은 아씨들" 같은 영화에 나오는 여인들이 입을 법한 드레스다. 

 

남자는 거울이 아닌 여자를 바라보며 귓가에 계속 부드럽게 속삭인다. 여자는 남자를 보지 않고, 거울을 보고 있다. 거울을 통해 두 사람을 관찰 중이다. 거울을 통해 뭘 볼 수 있을까? 남자는 여자의 껍데기를 보고 있지만 여자는 자신과 남자의 내면, 두 사람의 관계를 깊이 들여다본다.

 

 

 

남자는 여자의 귓가에 아주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있지만, 거울 속 남자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악마의 유혹처럼 협박에 가까운 집착, 광기, 상대를 제압하려는 강한 욕구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게 있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취하고야 마는 야욕으로 가득 찬 짐승 같은 남자 한 마리.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으면 힘으로 굴복시키겠다는 협박을 조곤조곤 내뱉고 있다. 뭔가 주단태스럽다. 내 뒤에 서 있는 남자와 거울 속 남자가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가장 사랑스러운 남자에게서 가장 섬뜩한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이 모순과 이질감은 꿈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나는 그걸 묵묵히 관찰하며 이면의 모습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맞아, 인간은 이렇게 모순적일 수 있지. 때론 전혀 그렇지 않은 상황을,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고... 세상에도 모순이 가득하지. 우린 그런 세상에 이미 살고 있지. 어디까지나 이 모순이란 것도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일 테니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아.

 

이건 다만 남녀의 이야기가 아니며, 나 자신, 인간관계, 내가 직면한 상황, 세상이 돌아가는 패턴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모순과 이질감에 해당된다.

 

모순과 이질감이란 표현은 뭔가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단지 서로 맞지 않는 성질에 대한 표현일 뿐이다. 그것은 그냥 그대로 하나의 성질일 뿐이다. 그런 것도 있다는 걸 바라보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 어떤 감정을 섞지 않아서인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을 동시에 바라보면서도 불편한 감정이 들진 않았다. 단지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어릴 때 같았으면 이런 순간, 그 남자에게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배신감, 실망감을 느꼈겠지만, 지금은 딱히 그런 감정은 들지 않는다. 어릴 땐 긍정적인 남성상 vs 부정적인 남성상의 틀이 강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그 경계가 더욱 모호해지고, 의미가 없어진다.

 

오랫동안 깊이 억눌러놓았던 부정적인 남성상이 거울을 통해 올라온다. 현실의 그 남자는 글렌처럼 한 여자를 사랑하는 다정한 남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 되는 억압된 남자는 존재감을 계속 드러내고자 올라온다. 깊이 억눌러 놓을수록 더 강하게 드러난다. 그가 감옥에서 탈출하려 한다.

 

잠시 시간이 흘러 배경이 바뀐다. 

 

다른 건물 안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모여있다. 도망쳐온 이곳이 안전하게 몸을 숨길 은신처라고 생각했지만, 아마도 잘못 찾아온 것 같다.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게임 미션을 성공하는 길 뿐이다. 그 룰은 아주 간단했는데 남자만이 여자를 선택할 수 있고, 짝을 이룬 커플만 함께 탈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안에는 남녀가 바글바글 가득했기 때문에 속으로 난 자신만만했다. 이렇게 많은 남자들 중에 나를 선택할 사람이 없을 리가 없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짝을 이뤄 이곳을 하나 둘 계속 빠져나갈 동안, 나를 선택하는 남자가 한 명도 나타나지 않는다. 

 

왜 선택될 때까지 내가 기다려야 돼? 무슨 이런 X같은 룰이 다 있어?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지만, 어쩌겠는가. 로마에 왔으니 로마법을 따를 수밖에... 어쨌든 어떻게든 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그때 어떤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드디어??? 날 선택하러 오나?? 바로 내 옆에 앉아있던 한 여자를 선택한다. 도무지 나보다 나아 보일 게 없어 보이는데 이 여자가 꼭 먼저 선택되어야 돼? 두 사람은 원래 아는 사이 같다. 

 

그렇게 다들 그곳을 탈출하고 난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한 채 좌절한다. 이건 정말 말이 안 돼.. 뭐가 잘못된 거지? 싫다고 할 땐 그렇게 귀찮게들 굴더니, 정작 필요할 땐 어떻게 한 놈도 안 나타나...  너무 하잖아...

 

왜 넌 네가 필요한 순간에 남자에게 무조건 선택받을 거라고 생각해? 왜 남자가 널 기다렸다는 듯 무조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거야?? 스스로를 다그치며 의기소침해한다.

 

잔뜩 풀이 죽은 나는 건물 밖으로 나온다. 울창한 숲 한쪽에 전신 거울이 하나 서 있다. 또 거울?

 

그 거울을 통해 또 무얼보게 될지 모르지만, 거울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비춰본다. 내 얼굴일까 아닐까? 거울 속엔 낯선 여자 한 명이 서 있다.

 

 

 

새빨갛고 라면처럼 꼬불꼬불한 머리칼을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린 창백한 서양인의 얼굴을 한 소녀가 서 있다. 그 머리칼은 바람 따라 가볍게 이리저리 나풀대고 있다. 창백할 만큼 흰 피부엔 주근깨며 잡티가 가득하다. 이게 누구지? 이렇게 빨간 머리가 내 머린가? 신기해서 라면 같은 머리칼을 만지작 거린다.

 

그렇다고 이 모습이 빨간 머리 앤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왠지 그녀가 떠오르는 걸 막을 수도 없다. 제법 큰 키에 빼짝 말라서 너저분한 옷을 입은 집시 같은 느낌이다.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고 방금 산속에서 뛰놀다가 온 것 같은 야생마 같은 모습이다. 살짝 미친X스러움도 있다. 씻지 않아 더럽고 냄새가 나는 것도 당연할 듯하다.

 

어딜 봐도 나 같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야생에서 자라서 누구에게도 길 들여지지 않은, 인간의 언어도 배우지 못한 늑대소녀 같은 모습이다. 아마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면, 공격하는 줄 알고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을지도 모른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며 왜 남자들이 누구도 날 선택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된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이런 모습을 좋아할 남자는 없을 거야. (뭐, 야생마 길들이기 좋아하는 남자도 있겠지만 ㅎㅎ)

 

어쨌든 이해가 되고 수긍을 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거울을 통해 이 소녀를 계속 보고 있으니, 볼수록 묘하게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중인격, 다중인격이 아니라도 누구나 내면에 이런 아이 한 명씩은 있게 마련이다. 그게 상처 받은 내면 아이일 수도 있고... 난 비교적 이 늑대 소녀를 이제까지 잘 컨트롤하며 살고 있다고 믿었었다. 

 

그런데 어쩌면 난 이 아이를 잘 다루고 있었던 게 아니라, 골방에 가둬두고 먹이지도 씻기지도 않고 학대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냥 존재 자체를 부정해버린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억압된 모든 것들은 언젠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어 있다. 

 

최근에 거울 명상을 했을 때는 별로 억압된 감정을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오히려 꿈을 통해 그런 것들이 하나둘씩 올라온다. 이 소녀를 풀어놓으면 어디 가서 무슨 사고를 칠지 몰라, 언제나 어두운 골방에 가둬두고 부정해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이 소녀를 해방시켜줄 때가 온 것 같다.

 

빨간머리앤 노래 가사 중에도 있지만,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보이는 존재다. 이 어디로 튈지 모를 자유분방한 소녀는 어딘가 모르게 사랑스럽다. 눈부신 햇살이 그녀의 머리를 흐트러뜨리자 난 더욱 소녀를 사랑한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 안의 야생 소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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