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집 리모델링 준비과정에서 오래된 물건을 대거 정리했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고 있지만, 집에는 여전히 안 쓰는 오래된 물건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족 공동의 물건도 많지만, 오래된 일기장(교환일기 포함) 손편지, 다이어리, 대학교 전공 자료, 이전 직장 관련 물품 등등 개인적으로 추억이 깃든 물건도 많았다.
추억은 아름답고 소중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계속 차곡차곡 쌓여갈 추억을 모두 물질로 쌓아두자면 공간 부족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언젠가부터 집안에 물건이 많은 게 싫다. 심플하고 여백이 많았으면 한다.
정기적으로 대청소를 하며 안 쓰는 오래된 물건 버리기를 하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왜 집안의 물건은 줄지 않고 계속 쌓여만 갈까? 우리는 풍족하다 못해 넘치는 물자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지구가 병드는 게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미니멀라이프
안 쓰는 오래된 물건 침대 버리기
초, 중, 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나눈 손편지, 카드와 쪽지 등을 거의 다 모아뒀으니 몇 박스가 넘었다. 요즘에야 스마트폰이 있으니 손편지나 쪽지를 쓸 일이 없지만, 내 추억 속 학창 시절에서는 손편지와 쪽지를 빼놓을 수가 없다. 특별한 사람들과 나눈 편지는 한 통이 기본 20~30장이다.
그 안에는 그 사람들의 모든 게 다 들어있었다. 기쁨, 즐거움, 고민, 슬픔, 아픔, 사소한 모든 것, 무거운 모든 것들... 그래서 더욱 버려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손편지가 가득 든 몇 박스는 상당히 무거웠다. 그 안에 담긴 그들의 가득 찬 생각만큼이나... 비우고 싶다. 가볍고 싶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는 이유는 단지 심플하고 가볍고 싶어서이다.
인테리어 업체에서 한 리모델링 공사기간은 8일 정도이지만, 셀프 리모델링과 그전에 준비과정(물건 정리정돈 및 버리기)이 거의 두 달은 걸린 듯하다. 내 방을 비롯한 온 집안은 계속 짐 정리 때문에 이런 난장판 상태였다. 버릴 물건과 남길 물건을 구분하는 일이 내겐 꽤 어렵다. 버릴까? 말까? 갈등되는 물건은 왜 또 그리 많은가!
수납장, 책장, 옷장 등 오래된 가구 몇 개도 버리기 위해 안에 짐을 모조리 꺼내니, 한번 써보지도 못한 물건들이 줄줄이 나온다. 박스가 없어서 우선 커다란 대야에 물건들을 가득 담아둔다. 엄마와 나의 정리정돈 방식이 다르다 보니, 이 과정에서 서로 스트레스를 제법 받았다. 아, 나도 내 살림 살고 싶다. ㅠ
이전 직장 관련 물품도 잔뜩 있다. 아니, 퇴사와 동시에 다 버리지, 왜 이렇게 모아뒀을까? 공연기획사에서 일할 때 스탭증, 공연 티켓, 포스터, 출연진 싸인, 야광봉 등등.. 이것도 몇 박스를 차지하고 있다. 스탭증(PASS)은 보통 공연이 끝나고 모두 수거하는데, 퇴사 후 프리랜서로 일할 때는 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모아둔 것이다. 스탭증은 한 50개 정도였지만, 티켓은 참여한 공연 전부를 모아둬서 제법 양이 많았다.
딥 퍼플(Deep Purple) 공연의 일화, 그땐 일을 하러 간 게 아니라 친한 공연쟁이 동생이 일하는 곳이라 놀러 갔었다. 그런데 딥 퍼플의 스타일리스트가 무슨 사정으로 공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늦은 시간에 오긴 했음.)
대기실에는 다 구겨져서 다림질해야 할 옷들이 많았다. 놀러 간 나는 패션디자인과를 나왔다는 이유로, 대기실로 급하게 불려가 딥퍼플의 무대의상 다림질을 했다고 한다. ㅋㅋ (걸어놓고 쉽게 다릴 수 있는 스팀다리미가 아니었음.)
추억의 안경, 라섹 한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안경을 끼기 시작해, 안경, 콘택트렌즈와 함께 한 수십 년의 세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안경과 콘택트렌즈를 갈아치웠을까. 라섹 후에 보관하고 있던 수십 개가 넘는 안경을 모두 버리고 딱 3개만 남겨뒀었다. 기념으로? ㅋㅋ
가장 좋아하는 안경, 선물 받은 안경, 가장 비싼 안경을 남겨뒀다. 맨 아래 있는 안경은 안경테와 안경렌즈 모두 고가였는데, 유행 한참 지난 걸 누구에게 주기도 그렇고 결국 모두 쓰레기통으로 직행~~ (버리고 나서 생각하길, 유행은 돌고 도는데 무료 나눔이라도 할 걸 그랬나 싶은..)
아무리 버리고 정리 정돈해도, 버려야 할 물건은 어디선가 계속 계속 나왔다. 무슨 물건이 여기저기 그렇게 꾸역꾸역 많이 들어 있었을까? 겨우 다 정리했다 싶으면, 며칠 뒤 다른 박스가 어디선가 또 나오고, 또 나오곤 했다. 평생 할 청소와 정리정돈을 올해 다한 기분이다. 왼쪽에 보이는 누더기는 다름 아닌 대학 졸업작품이다. ㅡ ㅡ ;;;
걸레 아니고 옷이다. 졸업작품이란 말이다! ㅋㅋ 그런지 룩 (grunge look), 그런지 패션을 좋아하진 않지만, (내 의도보다) 천연염색 교수님의 의도와 바람이 강력히 깃든 작품이다. 4명이 한조로, 옷 + 모자 + 신발 + 가방 등이 한 세트 작품이다. 싹 다리고, 깃은 풀 먹여서 마네킹에 풀 세팅해놓으면 나름 봐줄 만하다.
거즈 원단을 단계별로 천연염색해서 갈기갈기 찢어서, 광목 위에 덧대어 박은 것이다. 엄청난 노동이 들어갔지만, 결과물은 누더기라는 사실! ㅋㅋ 이 누더기가 뭐라고, 차마 이건 못 버리겠다.
패션디자인과, 스타일화 수업 때 만든 포트폴리오도 버리지 못하고 모두 모아뒀다. 첫 번째 남자 이미지는 스타일화 교수님께 칭찬 많이 받은 그림이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배경 디자인과 함께 전체 구성에 대해 칭찬해 주셨다. 내 그림은 늘 캐릭터가 심하게 개성 넘친다. 뭐 하나 평범한 그림이 없다. 대체 내 속엔 뭐가 들었을까? ㅎㅎ
별 기교 없이 그린 기본적인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이다. 그땐 수작업 일러스트가 많았다. 지금도 기본적인 수작업은 밑바탕 되어야겠지만... 전문 디자이너들의 기교 넘치고 디테일한 일러스트레이션을 볼 때마다 감탄 또 감탄하게 된다.
인체 비율은 기본이 10~12등신이다. 얼굴은 소멸할 것 같고, 어깨는 딱 벌어졌고, 여성인 듯 남성인 듯 중성적인 이미지에, 탄탄한 근육을 자랑한다. 옷은 줘도 못 입을 것 같은 디자인을 주로 그리되, 나름대로 실용성을 가미한 디자인도 많다.
오른쪽 이미지는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따로따로 그린 후, 조각을 모두 붙여서 복사한 것이다. 저거 그릴 때 정말 토나왔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난다. 말은 이렇게 해도, 난 이런 치밀한 작업을 상당히 즐긴다... ㅎㅎ
이미지맵 작업을 위해서 참 많이도 잡지를 사고, 오리고, 붙였다. (지금 보니 참 촌스럽다.) 우린 자주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헌 잡지를 구하러 다녀야겠다. 늘 발품 팔며 헌책방과 서문시장, 도서관을 누비고 다녔던 그때가 가끔은 그립다.
대학 새내기 시절 그림 연습하던 스케치북, 크로키북도 한가득 있다. 종이와 철사 분리수거하느라 스프링 빼는 데 한참을 애먹었다. 스프링이 생각보다 쉽게 안 빠지는구나. 졸업한 지가 대체 언젠데, 이런 건 왜 하나도 못 버렸을까? 대단한 작품도 아닌, 그저 학생 시절 습작들을 말이다. 이 모든 걸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겨두기엔, 인생의 짐이 너무 많다.
인체 크로키, 누드 크로키를 참 많이도 그렸다. 최대한 연결된 선으로 빠르게 그리는 연습을 많이 했다. 어릴 때 유치원을 미술학원으로 다녔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빠르게 그리는 크로키는 쉽지 않았다. 특히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사람은 자꾸만 지우고 다듬고 새로 그리고 싶어진다.
처음에는 크로키가 어려웠지만, 어느새 실력이 조금씩 늘어갔다. 강약을 살려 빠르게 빠르게~~ 그림은 그릴수록 는다. 나중에는 손에 그림신이 붙었다. 그냥 손이 막 저절로 움직이고 어느새 그림이 그려져 있다. Practice makes perfect~!!
잡지, 사진을 보고 정적인 인물, 동적인 인물을 그려보기도 한다.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어쨌든 초스피드로 그려야 하기 때문에 대충대충 빨리빨리~~ 그린다. 슝~~ 스노보드 타고 싶다!
신체 부위별 소묘(데생)도 많이 했다. 몸의 장기, 뼈, 근육 등 인체의 신비(?)를 제대로 알아야 인체를 제대로 그릴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관련 자료도 한 뭉치나 있다. 누가 보면 의대 다닌 줄!! ㅋㅋㅋ
패션 도식화, 후드집업에 모자가 저렇게 작은 건 반칙이다. (12등신의 소멸할 것 같은 머리를 가진 내 상상 속 인물에서나 가능할 모자) 모자 작은 후디는 정말 안 예쁨! 어쨌든 결론은 이렇게 전공 관련 추억의 쓰레기도 많다는 사실. 졸업작품과 포트폴리오 한 권을 제외하고 모두 찢어서 폐지수거함으로~~
문서파쇄기 없이 손으로 찢어버리느라, 손편지 몇 박스와 일기장(교환일기 포함)들은 몇 달에 걸쳐서 천천히 정리했다. 지금 집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다. 중간에 이사를 몇 번 하거나, 결혼이나 독립을 했다면 이런 짐들이 상당수 정리되지 않았을까 한다.
짐 정리 중에 가장 엄두가 나지 않는 건 바로 옷 정리다. 옷 못지않게 책도 많았는데, 그나마 책은 한차례 대거 정리를 해서 많이 줄었다. 많이 줄어도 한 책장 가득하고도 넘치는 걸 보면 아직 멀었는지도 모른다.
옷이 너무 많으면 입을 옷을 찾기가 힘들다. 못 찾아서 못 입는 옷도 제법 있다. 즐겨 입는 옷은 고정되어 있고, 몇 년을 손도 안 댄 옷이 더 많다. 혹시나 싶어서 놔두는 옷은, 역시나 몇 년이 지나도 입지 않는다. 그 옷은 어딘가 불편하거나 어울리지 않거나 매치해서 입을 옷이 없거나 유행이 지나서이다.
후자의 두 가지 이유라면 놔두면 다시 입을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전자의 두 가지 이유라면 아마 평생 입을 일이 없을 것이다. 옷을 하나 사면 하나 이상은 꼭 정리하는 게 좋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몇 년간 입지 않은 옷은 수시로 정리하는 게 좋다.
부모님이 지금 아파트 분양받아 처음 입주했을 때 사주신 침대이니 이것도 20년이 넘었다. 학창 시절부터 내 꿀잠을 책임져줬던 침대도 이제 안녕~ (새 침대는 훨씬 간소한 아이로 들였다.) 그때 꽤 비싼 가격으로 산 수납형침대라 20년 동안 매트리스 한번 바꾸지 않았지만 버릴 때까지 아주 짱짱했다는 사실.
싱글보다 조금 더 큰 슈퍼싱글 정도 사이즈인데, 침대 헤드와 서랍을 모두 분리하고 침대 프레임만 들어도 엄청나게 무거웠다. 옛날 가구와 물건이 재질도 더 좋고, 짱짱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침대 버리기와 함께 같은 날 책장, 서랍장 몇 개를 버렸는데(아빠와 둘이) 옮기다가 정말 토나오는 줄 알았다. 사람을 부르면 인건비가 몇 십만 원이다.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붙여서 5만 원 안으로 해결했다. 버리는 것도 다 돈이니, 살 때는 좀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윽... 먼지~~ 20년 넘게 침대가 한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라, 종종 구조를 바꿨기 때문에 그나마 먼지가 저 정도이다.
싱글 침대 대형폐기물 스티커 가격은 침대 프레임 5,000원 + 매트리스 5,000원으로 1만 원이다. 더블 침대는 침대 프레임 6,000원 + 매트리스 7,000원으로 13,000원이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 해당 구청 홈페이지를 확인!
폐가전은 무료수거가 되지만 침대 버리기(폐가구)는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붙여서 내놓아야 한다. 스티커를 사서 직접 붙이거나 해당 구청에서 대형폐기물 인터넷 신고를 하면 된다. 지역마다 다를 수 있지만 해당 구청 홈페이지 > 분야별정보 > 대형폐기물/폐가전 수거(결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형폐기물 배출방법, 대형폐기물 스티커 판매소 현황, 대형폐기물의 품목 및 수수료 기준, 대형폐기물 수거신청(결제) 또는 폐가전 무상수거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폐가전 수거 예약센터바로가기" 를 클릭하면 폐가전 무료수거 15990903 사이트로 연결된다.
▶ 2020/01/27 - [ 정보/각종 생활정보 및 리뷰] - 폐가전 무료수거 폐가전제품 무상 방문 수거 서비스 이용 후기
미니멀라이프 버리기는 정리정돈 공간 확보뿐만 아니라, 마음 비우기에도 효과 만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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